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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상조의 역사
이름 bayer 작성일   2002.07.29

관상조의 역사

 

인간이 야생에 서식하는 아름다운 새를 잡아서 기르고 즐기는 일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시작하였다고 할 정도로 오래된 일이다. 기원전 8,000년전 신석기시대에 이미 신전 등의 건축물을 짓고 이들 건축물이 비둘기의 번식 장소로 제공되었으며 촌락이 퍼져감에 따라 그 분포를 넓혀 나갔다.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5,000년전 경부터 비둘기를 통신용으로 이용 하였으며, 약 3,000~4,000년 전에는 가축화된 사육조가 등장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새 기르기가 유행하였고, 그 당시 왕족이나 귀족은 자주 매를 이용한 사냥을 하였는데 당시로선 최고의 스포츠였고 오락이였던 것 같다. 근대적인 새장을 사용한 사육은 14세기이후 무역과 항해술의 발달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서식하는 아름다운 새를 접하게 되면서 부터다. 처음에는 귀족부인들의 머리장식용으로 깃털을 이용하였으며, 15세기에는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카나리아를 아프리카 카나리아군도에서 스페인 선원들에 의해 처음 유럽에 반입하였다. 사육결과 좁은 새장에서도 번식이 가능하여 17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둥에서 사육되었으며, 그후 2차 대전 직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서식하는 사랑새가 영국으로 옮겨와 대량 사육과 다양한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앵무새와 공작새를 인도방면에서 수입하여 사육하였으며 그 후 우리 나라와 일본에 전해지게 된다. 우리 나라도 오래 전부터 왕실 및 세도가의 저택에서 대형 조류 위주로 사육하게 되며, 구한말에는 외국인에 의해 수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육은 1970년대 후반으로 삭막한 도시생활에 여유를 줄 수 있는 관상조류의 사육이 대중화되었으며, 전문 사육가들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지구상에 서식하는 새는 분류학상 29목 8,600여종이 되는데 환경오염과 도시화로 인해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에 비해 경제여건이 호전되고 사회가 안정됨에 따라 관상조류의 사육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앞으로 관상조류 사육에 대하여 체계적인 연구와 노력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야생조류를 보호하는 노력도 계속하여야 하겠다. 2001년부터는 축산기술연구소 가금 연구소 장영규 연구가가 애완조류에 대한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 참고자료 : 애완동물(선진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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